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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보 공개'상인 2. [국가투명성 지수]: 세계 1위 3. 차단용 토끼의 '비밀결사체 연구 기록(Secret Society Research Records)' 4. 14.8
  • 1. '정보 공개'상인 2. [국가투명성 지수]: 세계 1위 3. 차단용 토끼의 '비밀결사체 연구 기록(Secret Society Research Records)' 4. 14.8
[5: 구조론, 구조론적 분석]

[(구조론) '남한의 집단들'에 대한 구조론적 분석과 주변부]-[문서 번호: 2번째 형식 B20221108-00258]-(2023.08.31)

by XYZ(차단용 토끼) 2023.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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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 2023.08.31/목요일/PM 03:18)
(기록 완료: 2023.08.31/목요일/PM 08:12)
[1차 수정: 2023.09.01/금요일/PM 12:23] [2차 수정: 2023.09.02/토요일/AM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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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 '남한의 집단들'에 대한 구조론적 분석과 주변부]-[문서 번호: 2번째 형식 B20221108-00258]
(부제목: '회의주의와 경험론'과 현대 과학문명의 사상적 근간들, 그 뿌리의 발생 원인)
['차단용 토끼(Ein Sof)의 블로그'의 2522번째 게시물(2023.08.31 기준)]
[문서 번호: 2번째 형식 B20221108-00258]
[작성자: Ein Sof(차단용 토끼, 무서운 뱀)








※ 해당의 문서에 적용되거나 언급되는 '규칙, 위해, 정보들'에 의하여 
'Ein Sof'는 구속, 불이익, 위해, 형벌을 받지 않는다. 또한 'Ein Sof'는 
해당의 문서와 그것에 기록된 내용들에 의해 계급이 하락되거나 지옥에 
가는 처벌을 당하지 않는다. 'Ein Sof'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에 탄생한
세상의 모든 문서와 규칙들, 이야기들'에 의하여 '불이익, 계급하락, 
지옥에 가는 처벌, 죽음, 소멸, 형벌, 구속, 위해'를 당하지 않는다.

※ 모든 문서에서 말하는 'Ein Sof'는 해당 문서를 작성하는 '차단용 
토끼{South Korea(2023.01.14 기준)에 거주하는 김XX}'를 말한다. 
'차단용 토끼(무서운 뱀)'가 'Ein Sof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는 
'특별히 자신을 표현할 마땅한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1. South Korea의 집단들을 성향별로 분류하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이분법적인 분류는 불가능할 수 있다. 아래
분류는 객관적으로 확실한 기준을 중심으로 집단을 분류한 것이 
아니다. 다만 분석적인 차원에서 주관적으로 가상의 집단을 나눈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집단들의 사이에 교집합이나 중복적인 면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딥스테이트나 비밀결사적인 문제'는 
제외하려고 노력하였다. 아래의 분석에서 '차단용 토끼'는 객관적
분석'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특정한 집단이나 사상'에 무게를 두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1) 친일파 집단들을 가장한 '기회주의 집단들': 'South Korea의
친일파 집단들'은 친일파보다는 '기회주의 집단'에 가깝다. 그들은
일찍이 '조선의 패망'을 예측하고 일신의 안위를 위해 '일본'에
투항하며 복종한 '기회주의 집단들'이다. 'South Korea'에서 그들의 
세력이 정확히 어디까지 침투했는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일본
제국이 패망한 후 '일본지배하의 조선'에서 기득권을 유지한 세력들이 
그대로 'South Korea'에 신분을 유지하고 모든 것을 상속받은 것들을 
생각하면 무시하지 못할 세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사상에 
중심에는 조선의 개화파가 있을 수 있다. '일종의 문명 개화론'이나
'조선 계몽론, 조선민족의 열등함을 주장하는 사상, 자민족 패배주의와
탈아사상과 탈민족적사관과 탈조선적사관'이 그것이다. 다만 인지해야
하는 것은 '이들의 사상에 동조하고 한민족을 배반한 세력들'에 '조선의 
왕족과 양반 사대부 계층'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을사오적(乙巳五賊), 정미칠적(丁未七賊)으로 지칭되는 인물들'은 대부분
'고위 관료인 대신(장관), 고위 양반 귀족, 왕족'이였다. 즉 이들은 조선
에서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거나 왕족이였으며 귀족이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한일합방 이후 일본으로부터 '조선귀족작위'라는 귀족
작위(최대 후작)를 받게 된다.


미국의 흑선
(쿠로후네 사건, 
페리 원정; Perry 
Expedition)
[발생: 1853.07.08]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諭吉): 게이오기
주쿠 대학의 창설자, 
'일본 메이지 유신'의 
주역 중 한명.
[1835.01.10~1901.02.03]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 중심의 '제국주의적 
성향'을 가진 '공리주의자,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탈아론(脫亞論)'이라는 
사상을 제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그의 '자유주의적 성향'
은 '일본 정치상황 내의 
한정적 자유주의'인 것
으로 보여진다.

친일파(Chinilpa) 

※ 친일파(Chinilpa) 
집단들을 가장한 
'기회주의 집단들'

'조선의 왕족
과 양반 사대부 
계층'이 다수 
포함.

조선의 개화파
(Gaehwa Party)
[조선정부 중용: 1876년]

※ 충의계: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1880년에 만든 비밀결사.

'일종의 문명 
개화론'이나
'조선 계몽론, 
조선민족의 
열등함을 주장
하는 사상'에
동화됨.

갑신정변
(甲申政變, 
Gapsin Coup):
개화파가 일으킨
쿠데타 사건.
[1884.12.04]







※ 공리주의: 근대 
시민사회의 윤리적 
기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 고전
경제학의 사상적 기초'
와 '자본주의 질서 
구축의 토대'가 되었다.

※ 개발경제학(開發經濟學) 
또는 발전경제학(發展經濟學, 
development economics)은 
경제학의 한 분야로서, 저소득 
국가(빈국)의 경제 발전을 
추구함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와, 저소득 국가와 고소득 국가
(부국)의 경제, 사회 현상등의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경제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단순히 경제 발전
이나 개발에 수반하는 구조적 
변화뿐만 아니고 보건, 교육, 환경, 
노동 환경 등에 있어서, 개발에 
수반되는 공적 및 사적 측면에서
의 인구적 특성 변화를 분석하고, 
이러한 특성의 잠재능력을 최대화
하기 위한 정책적 방법론과 그 
기반에 대한 연구 또한 주요한 
연구 초점 중 하나이다. 이러한 
분석을 위하여 '각국의 국가 경제 
통계 자료에 대한 단면 분석'은 
물론, 시간에 따른 변화를 분석
하기 위한 '시계열 분석'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분석 방법론'을 사용
한다.

※ 현대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개발 경제학에서 1960~1970
년대의 생산 요소, 1980년대의 
내재적 기술 발전에 따른 경제 
성장 모델이 한국에 잘 들어 
맞지 않자 1990년대 들어서 
결국 '개발경제학자들'이 제도로 
이를 설명하려고 하였는데, 그에 
따른 연구 결과 제도연구가 
'개발경제학'의 흐름이 되자 
1986년 North and Weingast의 
논문 이후로 경제사에서도 제도
연구가 도입되었다. 이 제도들이 
시기상 일제강점기에 기원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식민지 근대화론
이 대두되었다.

※ 식민지 근대화론-1: '마크 피티, 
브루스 커밍스, 카터 에커트 등'이 
기존 개발경제학을 '한국의 일제
강점기 시절'에 적용하여 주장한
이론이다. 피티는 이 시기를 "일본
제국을 위한 수탈뿐 아니라, 사회
간접자본 구축, 산업생산 기반 강화, 
교육 및 위생의 개선 등이 수반된 
개발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하였으며, 
에커트는 "전통사회가 산업자본주의
를 마련할 기술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성장에 있어서의 
유산이 인정될 수 없다"고 보고 일제
의 전쟁부역은 비판하면서도 "식민 
시기의 산업화가 인력, 기술적 측면 
등에서 해방 이후 한국의 산업화에 
영향력을 끼쳤다"고 주장하였다.

※ 식민지 근대화론-2: '나카무라 
사토루'는 한국이 중진자본주의국
으로 서게 된 배경으로서 "식민지
화 이전의 내적 발전과 식민지배
가 결합되어 본원적 축적이 급속히 
이루어진 것을 토대로 1930년대 
일본 독점자본이 진출해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던 것"을 지목하였고, 
미야지마 히로시는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을 "조선 내에서 지속
되어온 토지개혁을 계승해 근대적 
토지 변혁을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이병천은 "1930년대의 이같은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이해는, 종래
와 같이 그것이 식민지적인 것, 
제국주의 지배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 그 때문에 전후 이러저러한 왜곡
되고 파행적인 식민지 유제를 낳았다
는 관점에 머무르는 것을 넘어서 
전후 한국자본주의의 역사, 그 내적 
모순의 전개과정과의 연관이라는, 
한국현대사를 자본주의 역사의 관점
에서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관점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안병직
은 "개발을 통한 제국주의측의 수탈
이라는 의미로서의 개발이자 조선인
을 근대적 주체로 변모시킨다는 자기
개발로서의 개발을 뜻하는 개발로서
의 개발이라는 구도로 봐야한다"고 
하였다.

식민지근대화론
(Colonial 
modernization 
theory)




그리스의 
소피스트
(sophist)
[출현: 기원전 5세기]

철학적 회의주의
(Philosophical 
skepticism)
[출현: 기원전 5세기]

불가지론
(agnosticism)
[출현: 추정불가]
※ 인도의 힌두 철학 
중심 분석 출현 시기: 
약 기원전 7~6세기

※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Age of Discovery): 
유럽사에서 '대략 15세기~17세기'까지를 가리키
는 시기를 '대항해시대'라고 한다. 이 시기의 유럽 
대륙은 '신대륙 정복과 인도양 일대의 식민지 건설, 
인도 서남부의 캘리컷의 코친(고치, 코치, Kochi) 
정복, 동남아시아 향신료 루트 개척(교두보 건설)'
을 시행했다. 여러 유럽 국가들은 '대항해시대'에 
식민주의를 정책사업으로 채택한다. 

※ '유럽 식민화의 
제1물결(the first 
wave of European 
colonization)'과 
대항해시대는 
동의어다.

생산력의 확장과 
무기 기술의 발전이 
'패권적인 제국주의'
를 가능하게 하고 
'많은 식민지를 거느린 
세계적 국가(A huge 
global empire with 
many colonies)'를 
출현(出現)시켰다.

대영 제국
(British Empire)
[1497~1947.8]

스페인 제국
(Imperio Español)
[1492~1968.10]

네덜란드 
식민제국
(Dutch 
colonial 
empire)
[1602~1975]

영국 
동인도 회사
(East India 
Company)
[1600.12.31
~1874.06.01]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Dutch East 
India Company)
[1602.03.20
~1799.12.31]

포르투갈 
동인도 회사 
(Portuguese 
East India 
Company)
[1628.08
~1633.05]

프랑스 
동인도 회사
(French East 
India Company)
[1664.09.01
~1794]

※ 유럽대륙의 '아메리카 
대륙, 인도양, 동남아시아 
정복'은 '물질적 산물의 양적 
증가'를 일으켰다. '물질 산물
의 양적 증가'는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일으켜 '기술력의 
증가(산업혁명)'를 일으킨 것
으로 보인다. 

※ 유럽대륙이 '아메리카 대륙, 
인도양, 동남아시아'를 정복하여 
'물질 산물의 양적 증가'를 일으킨 
다음 '기술력 상승(산업혁명)'에 
성공한 것은 '아래와 같은 예시'로 
설명할 수 있다.
 
(1) '유럽 대륙의 대륙 간의 
정복사업이 기술력을 상승시킨 
모습'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에서 '기술력 테크'를 올리는 것에 
'자원 채굴과 식민지 정복'이 요구
되는 것과 유사하다. '보통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Strategy game)'
에서 '기술력을 상승(개발)시키는 
방법'은 2가지이다. 1번째는 식민지 
정복이며 2번째는 '자원 채굴(광석, 
미네랄)'이다. 신대륙 정복이나 동남
아시아의 교두보 건설은 '식민지 정복'
에 가까우며 '인도와의 강제적 교역'
은 자원 채굴에 가깝다. Japan의 게임
인 'SD건담 GNEXT(1995.12.22, 유통; 
반다이)'에서는 기술력을 '34 TEC'까지 
올릴 수 있으며 그것을 올리는 방법은 
'식민지 건설(도시, 콜로니 점령)'뿐이다. 
'SD건담 GNEXT(1995.12.22)'에서 점령
당한 '콜로니와 도시들'은 당장에 
경제적 이익과 산출물을 상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들은 1턴이 지날
때 마다 각 도시별로 '2,500에 달하는 
자본적인 금액'을 상납한다.




경험론
(經驗主義, 
empiricism)
[출현: 17세기 초기]

※ 산업혁명(産業革命, 
Industrial Revolution):
산업혁명은 18세기 중반
~19세기 초반까지, 
약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영국에서 발생한 
기술의 혁신을 통한 사회, 
경제의 큰 변화를 말한다.
[1760년~1820년]

'산업혁명의 시초'는
1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몇 개의 혁신과 관련됨.

(1) 방적기 발명

(2) 증기 혁명

(3) 제철산업





'산업자본가들과 
학자들'은'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며 
뿌리인 회의주의'
와도 결별할 준비
를 하고 '새로운 
사상과 과학만이 
만능이며 산출된 
결과물들만이 전부
인 사상적 배경
(Ideological 
background in 
which only new 
ideas and science 
are omnipotent 
and only produced 
results are 
everything)'이 
필요하게 됨.

공리주의
(功利主義, 
Utilitarianism)
[출현: 18세기 말]

실용주의
(pragmatism)
[출현: 1870년]

실증주의
(positivism)
[출현: 19세기 후반]

분석철학
(分析哲學, 
analytic 
philosophy)
[출현: 1900년 초반]

과학적 회의주의
(scientific skepticism)
[출현: 19세기, 
1881년, 1949년]

(1-1) '친일파 집단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의 개화파의 사상적 
근간': '우선 조선의 개화파들과 갑신정변을 일으킨 세력들'은 배후에서
일본의 지원을 받았다. 특히 '후쿠자와 유키치(게이오기주쿠 대학의 
창설자)'는 이들의 정신적인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
는 '일본 메이지 유신'의 주역 중 한명이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나비효과와 같이 '미국의 흑선(쿠로후네 사건)'으로 촉발되었다. 그러면
정확히 '조선의 개화파나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은 무엇일까? 사실
그러한 분석들이나 사상적 근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평소에 하는 말들이다. 특히 이들의 후계자이며 사상적
후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설파하는 존재들은 이들의 
사상을 추종하며 맥을 같이할 것이다.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
를 계량학적이고 경제학적으로 접근하여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실증학적 계량학과 경제적 관점'이다.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들의 사상
을 잘 분석해보면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들은 모든 
것을 '수량적, 계량적 접근법과 분석적인 비판'을 통해 통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사상적 뿌리는 바로 현대문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경험론, 실용주의(미국 고유의 사상; 도구와 수단으로써 사용되며 실제적
으로 도움이 되는 지식), 실증주의'이다. 보통 역사적 분석의 관점에서는 
'인문학적이며 철학적인 요소의 분석과 사료 입증'이 주된 관심사이나 
'이들은 과학적이며 경제학적인 관점의 사고'로 역사를 분석하고 재단
하려고 노력했다.

(1-2) 현대의 실용주의와 실증주의의 역사적 뿌리인 경험론과 회의주의:
'철학적 회의주의(Philosophical skepticism)'는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
의 기본적인 사상이다. 회의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지식과 인지로
실제의 참인 것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상이다. 또한
'절대적 지식과 절대적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개념에 대하여 비판하며 
'불가지론(agnosticism)'과 유사한 관점을 주장했다. 불가지론은 "사물의 
본질을 인간이 파악할 수 없다'는 철학적 관점이다. 경험론은 회의주의에서 
나온 사상이며 다시 '분석철학과 미국의 실용주의'로 발전한다. 과학과 현대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실증주의(positivism)' 또한 '경험론(經驗主義, 
empiricism)'을 뿌리로 두고 있다. 회의주의를 요약한 영화들에는 '매트릭스, 
인셉션'이 존재한다. '통 속의 뇌, 데카르트의 악마이론 등'이 대표적으로
회의주의를 요약한 예시이다. 이렇게 보면 회의주의에서 어떻게 '과학적 
회의주의'나 지금의 '실증주의'가 나올 수 있는지 의심할 수 있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실증 가능성과 반증 가능성'에 기반하여 주장을 평가하려고 
노력하는 입장이며 '믿음과 일회적인 증거에 의한 주장을 수용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상이다. 또한 이들은 '고전적(철학적) 회의주의'를 일부 비판하는 
입장을 견지한다.

(1-3) '철학적 회의주의(Philosophical skepticism)'는 '고전적 회의주의'를
말하며 보통의 '회의주의'를 말한다. 현대에 와서 회의주의가 무조건적인
과학적 사고를 요구하는 한편 그것을 절대적으로 맹신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고전적 회의주의'에서 파생된 변질된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kepticism)'가 매스미디어에서 '일반적인 회의주의'로 남용되고 받아들여진 
다음이다. '회의주의(철학적 회의주의)'라는 것은 원래 미신을 혁파하고
신을 부정하며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하는 사상과
동일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과학적 회의주의'라는 것은 현대의 몇몇학자들
이 급조한 신조어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회의주의'를 '전가
의 보도(傳家寶刀)'처럼 '초자연적 현상, 미스테리, 신의 존재와 종교'를 공격
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원래 진정한 회의주의(Philosophical 
skepticism)'라는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과 인지로 세상에서
무엇인가의 참인 것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의주의'는 신의 존재의 가능성에 대하여 일부 인정할 수도 있으며 
'모든 미스테리'에 대하여도 인정할 수 있는 열린 입장일 수 있다. 그 이유는 
'회의주의'라는 것은 '인간의 지식과 인지로 세상의 진실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1-4) '철학적 회의주의(Philosophical skepticism)'에서 '영국의 경험론'으로
그리고 다시 '분석철학'으로 '회의주의 자손적인 사상들'은 세상에 뿌리를 
내린다. 서양의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기독교 국가'였으며 그러한 상태
에서 '철학적이거나 방법적 또는 학문을 연구하는 철학적 사고'에 대한 연구
가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철학적 방법론'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노력하거나 일부 인정하는 입장
을 취해왔다. 당연히 '회의주의, 경험론' 또한 그러한 가능성을 일부 제시한 
것이 사실이다. '미숙한 동양의 학자들과 학생들(Immature Oriental Scholars 
and Students)'은 이러한 부분을 통찰하지 못하며 비웃고 무시할 것이다. 
'어떠한 사고나 철학의 사상적인 뿌리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이러한 것을 압축하여 '내력(來歷)'이라고 말한다. 
또는 근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신의 존재의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는 '회의주의'에서 '과학적 사고와 물질적 실증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는 여러가지 사상적 자손들'이 나온 것은 '급격히 
팽창한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문명, 산업혁명'에 원인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후기 문명의 발전에 의하여 정밀한 공업기술과 장인들'은 더 진보된 무기들
을 만들었으며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것에 핵심적 요소였을 것이다. 중세와 
근대를 넘어 생산력의 확장과 무기 기술의 발전은 패권적인 제국주의를 
가능하게 했고 '많은 식민지를 거느린 세계적 국가(A huge global empire 
with many colonies)'를 출현(出現)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정밀한 
기술들은 '확실한 수학적 지식과 오차가 없는 완벽함'을 '기술과 장인들, 학자
들'에게 요구했을 것이다. '확대된 거대 자본을 가지게 된 세력들'과 '정밀한 
계측을 통하여 진보된 문명의 산물을 본 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자신을 가지게 
되었고 서서히 교만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며 '신과 종교'에 대하여 거리를 두고 
싶어했을 것이다. 이들은 이제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며 뿌리인 회의주의'와도 
결별할 준비를 하고 '새로운 사상과 과학만이 만능이며 산출된 결과물들만이 
전부인 사상적 배경(Ideological background in which only new ideas and 
science are omnipotent and only produced results are everything)'이 필요
했다. 나머지는 지금의 인간세상이다. 이것이 진실인데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 '기타의 South Korea의 집단들'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A-1) 1950년대부터 정경유착을 중심으로 성장한 전통적인 대기업과 
재벌 집단들.

(A-2) 기독교 우파 세력들과 친미국적인 집단들.

(A-3) '경상도 패권주의 세력들'과 경북 대구의 보수적 인원들.

(A-4) 신흥 인터넷 산업과 게임 산업의 기업가들과 자산가들.

(A-5) 쿠데타 군부 출신의 내력을 가진 인물들과 군부 인사들.

(A-6) 삼족오 성향의 민족주의 집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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